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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12자··· 광주시민·법 앞에 인정도 반성도 없었다

입력 2020년 04월 27일(월) 16:36 수정 2020년 11월 17일(화) 13:38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가 27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srb.co.kr

"어,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겁니다. 그런 무모한 짓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가 계급이 중위나 대위인데 이 사람들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음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한 헬기사격을 목격한 고 조비오 신부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남겨진 전두환은 13개월만에 다시 광주시민과 법 앞에서 선 자리에서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자신의 공소사실을 또박또박 반박하며 명확하게 혐의를 부인했을 뿐이다.

규명되지 않은 아픈 진실을 품은 채 5·18은 40주년을 맞았지만 전두환은 5월 관계자와 시민 그 누구에도 단 한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재판 도중에 고개를 떨구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전씨는 1년여 전에 열린 재판에서도 거듭 조는 모습을 내비춰 공분을 샀었다. 최소한의 예의도 져버린 것이다.

전두환은 27일 오후 1시57분부터 오후 5시22분까지 205분(휴정 포함)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재판에 피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권색 정장에 하늘색 넥타이, 마스크 차림의 전씨는 청각 보조장치인 헤드셋을 착용했다. 전씨는 재판장의 생년월일, 직업, 거주지 주소 등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안들린다"고 말했지만 '신뢰 관계인' 자격으로 동석한 아내 이순자씨의 도움을 받아 '1931년 1월18일입니다', '현재 직업 없습니다', '맞습니다' 라고 답했다.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이어 검찰 측의 모두진술이 진행되자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의자에 기대있던 전씨는 재판장이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는가'라고 질문하자 허리를 세워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는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것"이라며 "헬기 사격수 계급이 중위나 대위인데 대한민국의 아들인 이 사람들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음을 나는 믿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112자, 전씨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발언을 마친 후에는 자신의 변호사와 눈을 맞추고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이어 전씨의 변호사도 50여분간 검찰의 기소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전씨는 재판이 다소 길어지자 이따끔씩 고개를 떨구며 조는 모습을 보였지만, 변호인이 준비한 영상과 사진 자료가 제시될 때는 화면에 집중했다.

재판 과정에서 '그럼 누가 죽였어?', '전두환 살인마', '납득할 소리를 해야지' 등 방청객 항의에도 전씨는 잠시 방청석을 응시할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한 차례 휴정 후 재판 재개에 앞서서도 방청석에 앉아 있던 흰 소복을 입은 5월어머니회 회원이 "사람죽인 사기꾼 왜 말을 안해"라며 울부짖었지만 전씨는 눈을 감은 채 반응하지 않았다.

한편 전씨는 이날 오후 12시19분,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에서 내려 광주지법 법정동에 입장할 때도, 오후 5시43분 검은색 카니발 리무진을 타고 법원을 빠져나갈 때도 "많은 죄를 짓고도 왜 반성하지 않습니까?',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사죄하지 않으실겁니까?'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전씨의 다음 재판은 6월1일 열린다.

주현정기자 doit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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