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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드라마 같은 아버지 삶, 드라마 속 절친 이맹기씨 어디 계시나요"

입력 2021년 06월 07일(월) 13:53 수정 2021년 06월 08일(화) 00:13
고 정용훈씨(왼쪽)과 이맹기 전 무등일보 부국장 모습

"아버지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따뜻한 마음과 우정으로 곁을 지켜준 친구분을 찾고 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버님을 대신해 고마움과 감사함을 꼭 전달하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집을 잃은 후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살며 힘든 때를 함께 보냈던 아버지의 절친을 찾는 한 재미교포 가족의 사연이 무등일보에 접수돼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고 정용훈씨의 부인 장명숙(71)씨와 큰딸 정지아(39)씨다.

재미교포인 이들은 1948년 당시 5살에 서울에서 살다 길을 잃은 뒤 가족과 떨어져 고아로 살다 광주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가정을 이뤘지만 지난 98년 54살에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일명 루게릭병)으로 숨진 아버지 정씨가 생전 그토록 그리워했던 이맹기 전 무등일보 부국장을 찾아달라는 사연을 접수했다. 이 전 부국장은 광주일고를 나와 무등일보에서 삽화를 그렸던 언론인이다.

부인 장명숙씨와 큰딸 정씨가 정용훈씨 생전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정씨와 이씨의 인연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씨는 48년 어느 날 혼자 외출했다가 가족과 떨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아가 됐다.

그는 그렇게 거리에서 살다 50년 한국전쟁을 겪었고 전쟁고아로 분류돼 미군의 보살핌으로 자라났고 미국으로 입양될 기회가 있었으나 양부모 중 한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입양이 좌절되는 등 힘든 삶을 살았다.

이 전 부국장과 정씨가 만난 것은 1959년 무렵이다. 정씨는 그를 돌보던 미군병사의 지인으로 광주에 와 있던 선교사이자 의사인 허버트 카딩턴(한국명 고허번·1920∼2003) 박사 부부 집에서 살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카딩턴 박사는 1949년 한국 의료선교사로 온 후 51년 광주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을 재개원하고, 제5대 원장으로 고통받는 이웃에게 치료 약과 먹을 것을 주고 각종 구호물자로 빈민 구제 활동을 펼치는 등 '광주의 성자'로 불렸다.

카딩턴 박사의 보살핌을 받던 정씨는 59년 가을 당시 광주일고에 다니던 이맹기 전 부국장과 세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내며 우정을 나누고 속을 터 놓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정씨는 특히 관절염으로 쇠약해진 몸에 가족과 떨어진 고통과 상처를 이 전 부국장과의 교유를 통해 치유하며 삶에 대한 의지와 꿈을 키웠다는 것이 가족들의 전언이다.

고아 신분으로 인한 제약으로 배움의 꿈을 접어야 했던 정씨는 자신의 손가락 관절염을 치료해 준 의사의 주선으로 미국 한 상원의원의 도움을 받아 64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세 나이로 조지아주에 정착, 래븐 갭 고교를 수석 졸업한 후 보스턴의 서포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로 일하며 가정을 꾸렸고 두딸을 키워냈다.

정씨는 87년 꿈에 그리던 서울 가족과 상봉, 자신의 성을 찾았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도 수년간 이 전 부국장과 편지를 교환했으나 오랫 동안 소식이 끊기고 지내다 98년 지병으로 숨지며 가족들에게 꼭 그를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정씨 가족은 그의 타계 후 생업 등으로 바쁘게 살다가 최근 뉴욕 컬럼비아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큰딸 지아씨가 아버지의 자서전을 준비하다 자료 조사와 함께 이 전 부국장에 대한 만남을 위해 최근 한국을 방문, 사연을 전하게 됐다.

부인 장명숙씨는 "뜻하지 않게 가족과 헤어져 고아가 돼 머나먼 미국 땅으로 건너와 가족을 이루기까지 남편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며 "그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정신적으로 큰 위안과 힘을 준 이씨를 만나기 위해 광주에 왔는데 살아서 만날 수 있다면 더 할 수 없이 좋고 생사 여부라도 알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큰딸 지아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이 전 부국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힐만큼 자주 들어서 잘 알고 있다"며 "아버지의 유언도 있고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라도 이 전 부국장님과 가족들을 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전부국장의 가족은 1남2녀로, 은행권에 근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들 가족은 정씨의 자서전 '지미'를 준비 중이며 오는 8월16일까지 한국에 머물 계획이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