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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영상] 김덕령 장군의 얼이 서린 광주 충효마을

입력 2021년 07월 20일(화) 17:04 수정 2021년 07월 20일(화) 18:24
멀리 무등산이 보이는 충효마을 모습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는 김덕령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가 있다. 김덕령 나무는 많은 시민들이 왕버들로 알고 있는 나무다. 충효동 왕버들군은 광주에서 나무로는 맨 처음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나무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539호이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6호다. 왕버들군은 추정 수령 400년이 넘은 세 그루 버드나무다. 왕버들 나무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형적 결함 등을 보완하기 위한 비보림으로 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고 높이 12m를 넘는 나무 기둥에는 지나 온 세월동안 비와 눈, 바람과 번개가 새긴 아름다운 주름이 물결처럼 흐른다.

나무들은 모두 나이든 나무답게 여러 개의 지팡이에 의지해 서 있다. 나무의 모습에서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격언처럼, 지팡이를 짚은 노인에게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충효동의 효에 대해 깨닫게 하는 나무다. 왕버들군을 포함해 충효동에는 지정문화재가 11 곳 있어서 광주에서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이다. 왕버들군 옆에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충효동 정려비각'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덕령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씨, 김덕령 장군의 형 김덕홍, 아우 김덕보 등 일가족의 충효와 절개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마을 앞에 세운 비석과 비각이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 증 좌찬성 충장공 김덕령 증 정경부인 흥양 이씨 충효지리'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김덕령 일가의 충효열에 대한 찬양과 정조 임금이 직접 마을 이름을 지어 내렸다'고 적혀 있다.

충효동 왕버들군 나무

비석을 통해서 충효동이 1788년 정조 12년에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을 하사받았고 이듬해인 1789년에 이와 같은 유래를 기록한 2.2m 높이의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비각은 1792년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세웠다. 이처럼 충효마을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마을이다. 100m 떨어진 곳에 김덕령 장군 생가 터가 있다. 1567년에 태어나 1596년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김덕령 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생가 터는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대신 근처에 부조묘가 있다. 부조묘는 충장공 생가 터 옆 충장공과 부인 흥양 이씨를 모시는 사당으로, 2004년에 생가 터 옆으로 이전해, 매년 음력 8월 20일에 위패를 생가에 모시고 제사를 올리고 있다. 충효마을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고 산이 성처럼 둘러 있어서 성안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길에는 충효분교 아이들이 정성들여 쌓은 돌탑이 있어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과 반짝이는 눈을 만날 수 있다. 김덕령 장군이 태어나 뛰어 놀았을 마을 고샅길에는 돌담이 있다.

돌담에는 사계절 지지 않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 정답게 살아가는 마을임을 짐작하게 한다. 마을에는 어머니들이 이용하던 공동 우물과 빨래터가 있고,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자라는 등 오랜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다. 구경하다 힘들면 부연정에서 쉬어갈 수 있다. 정자에 앉아 쉬노라면 나무를 스쳐 온 바람이 김덕령 장군의 이야기를 전해오고, 부연정 아래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의 돌은 장군을 기다리는 듯하다.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던 김덕령 장군의 얼이 곳곳에 서린 충효마을. 충효마을에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충과 효 그리고 열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정규석 무등일보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