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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좌충우돌 살아온 '미생'···곡성 뿌리내려 '완생'

입력 2021년 09월 07일(화) 14:34 수정 2021년 09월 13일(월) 19:07
어린이 바둑교실 개최 등 바둑계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던 정방호씨가 이제 곡성지역의 바둑 활성화를 위해 곡성교육문화회관에서 영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바둑수업에 열의를 내고 있다.

섬진강과 대황강이 몸을 섞고 입맞춤하는 두물머리 압록 근처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정방호(61)씨는 적어도 곡성에서만큼은 '바둑의 신'으로 통한다. 내로라하는 고수라 해도 정씨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어쭙잖은 필살기로 중원에서 동귀어진(同歸於盡·파멸로 함께 돌아간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과 같이 죽음으로써 끝장을 냄)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50여년간 바둑인생을 살아온 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한국기원 한국바둑교실협회장, '아이 바둑'의 창시자, 영호남 어린이바둑교류전의 주인공, '바둑이 문화와 예술 장르가 아닌 스포츠여야 한다'고 주창한 선구자 등등. 그의 앞에는 늘 바둑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수식어가 뒤따른다.

그런 그가 2년여 동안은 외도(?)를 했다. 전원생활을 꿈꾸던 아내 허영은(54·화이트빌리지 대표)씨를 위해 광주에서 곡성으로 이주, 펜션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곡성으로 이주한 지난 2014년 12월 이후부터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정말 초야에 묻혀 살았다. 아내를 도와 펜션의 마당쇠 역할을 자처하면서 전북 임실에 있는 한국목조건축학교 3개월 과정을 수료했다. 펜션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수리해야 할 일들이 자주 발생해서다. 자신도 몰랐던 목공예 취미가 차츰 생겨났다. 재미가 쏠쏠했다. 아예 펜션 가장자리에 자신만의 공간인 공방을 마련했다. 주말과 휴일에는 세상없어도 공방에서 '뚝딱 뚝딱' 뭔가를 고안하고 만들어냈다. 2015년 10월에는 한국목구조기술인협회가 주최한 목가구제작 경기대회에서 동상까지 받았다. 2019년 8월에는 목재를 이용한 서각작업도 병행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7월초 한국서각협회 주최 대한민국서각대전에서 입선을 거머쥐기도 했다. 드넓은 펜션에는 목공예에 대한 열정을 반영하듯 크고 작은 공구들과 목재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다.

한동안 바둑세계에 두문불출한 그였지만 바둑은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돼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지난 2017년 초 곡성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바둑지도를 해줄 수 없느냐고 간청하면서…. 한참을 고민하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가르쳐 보겠다고 했다. 바둑이 또 삶의 일부로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난해 곡성교육지원청에서 지역 연대사업의 일환으로 바둑수업을 진행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지난 3월부터 곡성 중앙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일주일에 3시간씩(1~2학년 1시간, 3~4학년 1시간, 5~6학년 1시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죽곡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로 일주일에 2시간씩, 곡성군에서 영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에 2시간씩 바둑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제 그는 바둑이 자신의 삶이고 인생의 전부로 여기고 있다.

"바둑은 두뇌개발과 집중력을 높이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창의력과 인내력, 논리적 사고에 상당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익히는 게 좋습니다. 무슨 일이든 배우다 보면 과도기와 권태기가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슬기롭게 넘겨야 합니다." 바둑사랑에 대한 그의 지론이다.



50여년간 바둑인생을 살아온 정방호씨가 곡성 죽곡초등학교에서 일주일에 2시간씩 방과 후 돌봄교실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담양 출신인 그가 바둑을 접한 것은 일곱 살 때부터였다. 작고하신 아버님과 바로 위 형님(아마추어 강 1급)이 바둑을 두는 걸 어깨너머로 슬금슬금 배웠다. 이후 그의 바둑수업은 줄곧 독학이었다.

사실 그는 바둑보다는 스포츠를 더 좋아했다. 이미 고교시절 전국체전에 출전할 만큼 태권도 실력이 탁월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오도관 사범으로 활동할 정도였다. 지난 84년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한 그는 85년부터 87년까지 강원도와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섹션 매니저로 활동하다 호텔업계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 노조위원장을 지내면서 여행과 관련된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호텔업계와 조직폭력배들의 결탁으로 우여곡절 끝에 광주로 낙향할 수밖에 없었다. 낙향하자마자 그렇게도 좋아하던 태권도 사범으로 또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한창 태권도 사범으로 체육관을 잘 꾸려가던 그에게 느닷없이 시련이 닥쳐왔다. 88년 8월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그가 돌연히 나타난 트럭으로 오른쪽 무릎을 송두리째 잃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이는 분명 운명의 장난이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방황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던 게 얼추 1년6개월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추슬러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바둑을 다시 손에 잡았다. 재미삼아 취미로 바둑을 두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었다. 뭔가 의미 있는 바둑 인생으로 다시 태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바둑을 배울 학습의 장이 없다고 판단, 지난 90년 3월 '오로(烏鷺)'라는 어린이 바둑교실을 열었다. 처음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지만 수강생들이 몰려들었고, 3년여가 지난 시점부터는 500여명의 수강생들로 북적이는 호황을 누렸다. 주부들이 바둑을 너무 몰라서 아이들의 집중력, 창의력 개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취지로 '주부 무료 바둑강좌'도 개설, 세간의 화제를 낳기도 했다. 전국바둑교실협회 호남지부장 시절에는 중국 광저우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1천여명이 참가한 JC배 어린이 바둑대회를 개최했고, 무등일보배, 광주 MBC배 등 각종 어린이 대회도 잇따라 개최했다. IMF 시절에는 약간의 고비가 있었다. 그러나 99년 초에는 정상화됐고, 섬진강휴게소에 대형 현수막을 걸고 부산과 광주·전남북 120명의 영호남 어린이바둑교류전을 추진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초 한국기원의 전국바둑교실협회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바둑을 스포츠로 하자'고 주장, 100만명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이 운동에 힘입어 지난 2002년 말 바둑이 생활체육으로 등록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2008년 광주에 한국바둑교육협회를 설립하는 등 바둑교육을 설파, 다음해 9월 회장으로 추대됨과 동시에 한국기원 한국바둑교실협회장에도 선출됐다. 회장 재임 당시 교육부로부터 바둑교실을 최초로 승인받는 개가도 올려 어린이 바둑 공인 급단증을 수여하는 업적을 남겼다. 2014년 초 그는 또 여러 가지 형태의 바둑교실을 하나로 통합 '아이 바둑'으로 명명한 데 이어 서울~제주를 오가며 조그만 펭귄 이미지의 배지 제작에 나서는 등 바둑계에 괄목할만한 위업을 달성했다. 바둑을 향한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었을까. 결국 바둑은 2016년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내년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개인, 남자 단체, 여자 단체 등 3개 세부종목 바둑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섬진강 압록 인근에서 팬션을 하고 있는 정방호씨가 지난 2015년부터 취미생활로 팬션 가장자리에 자신만의 공간인 공방을 마련, 짬짬이 목가구를 만들고 있다.

요즘 그는 바둑도 바둑이지만 그림그리기에 푹 빠져있다. 도화지에 드로잉을 하고, 수채화도 그리는 등의 습작을 하면서 타고난 또 하나의 소질계발에 열심이다. 아마추어 드로잉모임인 '생연필'을 발족하고 최근 곡성 갤러리에서 창립전도 열었다.

"저의 굴곡진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아이들의 조기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연히 인성교육이 밑바탕에 깔려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목표가 전인교육을 지향한다지만 아이들의 끼,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시켜주는 정책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바둑이나 그림그리기, 스포츠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미력하나마 아이들의 특수교육 개발에 일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둑이면 바둑, 목공예면 목공예, 드로잉이면 드로잉, 못하는 게 없는 다재다능한 팔방미인 정방호씨. 겉에서 언뜻 보기엔 그저 평범한 촌동네 아저씨 같지만 일을 향한 열정과 신념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따뜻한 심성의 멋진 달인이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는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는 부러움의 대상이고, 매력적인 영원한 바둑 선생님이 아닐까 싶다.

김봉일기자 amazingreporter@mdilbo.com·곡성=김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