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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이 만난 사람 ⑨]'고려인 역사 지킴이'의 외길 인생- 월곡고려인문화관 김병학 관장

입력 2021년 06월 29일(화) 16:52 수정 2021년 07월 14일(수) 15:24
‘고려인 역사 지킴이’로 통하는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장이 무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려인은 강제이주라는 아픈 역사속에서도 조국의 문화를 당당히 지켰고, 항일전선의 최선봉에서 싸웠던 사람들이다” 며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인 고려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오세옥기자 dkoso@mdilbo.com


광주시 광산구 월곡2동은 행정구역상의 이름보다는 '고려인 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00년 초반, 고려인 동포 몇 사람의 정착을 시발로 20여 년 만에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등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 7천여 명이 거주하는 마을공동체로 성장했다. 마을에는 고려인 종합지원센터와 미디어센터, 라디오 방송국, 지역아동센터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고, 지난 5월에는 상설 월곡고려인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월곡고려인문화관은 김병학(57) 관장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25년간 체류하면서 모은 고려인 관련 역사문화자료를 모태로 이뤄진 공간이다. 고려인들의 항일자료와 문화자료 등 역사유물 1만2천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 유물 가운데 23점은 2020년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지정됐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고려인만의 유물 전시관이다. 문화관 관람은 무료다.

김 관장은 1992년 민간한글학교 교사로 카자흐스탄에 첫발을 내디딘 뒤 재소 고려인 사회의 모국어 신문인 '고려일보'의 기자와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을 지냈다. 저서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가 있고, '모쁘르 마을에 대한 추억' 등 다수의 번역서를 냈다. 카자흐스탄 문학을 국내에 소개해 온 공로로 카자흐스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김 관장을 만나 고려인 사랑에 흠뻑 빠진 외길 인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려인 역사 지킴이’로 통하는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장이 무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려인은 강제이주라는 아픈 역사속에서도 조국의 문화를 당당히 지켰고, 항일전선의 최선봉에서 싸웠던 사람들이다” 며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인 고려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오세옥기자 dkoso@mdilbo.com

-지금껏 25년간 고려인과 관련된 일을 해오고 있다. 신념인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0년 한·소 수교를 계기로 구소련 고려인들의 고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모국어를 찾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호응하여 광주와 전남지역에서도 기관·단체와 활동가들이 기금을 모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에 민간한글학교를 세운 적이 있는데 그때 한글학교 교사를 자원했다. 민간한글학교 교사를 시작한 곳이 카자흐스탄 우쉬또베라는 마을이었는데 1937년 강제이주 때 연해주와 사할린 등 소련 극동지역에 살던 동포들이 짐짝처럼 실려와 부(뿌??)려진 곳이다. 그곳에서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고려인의 아픈 역사에 눈을 뜨게 됐고, 그러다보니 그들(고려인)을 위해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신념으로 시작했던 일은 아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신념이 됐다."


-우리에게는 중국동포를 비롯해 많은 국적의 해외 동포가 있다. 특별히 고려인 동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나 일본, 중국 동포는 인구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도 기반을 다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인 동포는 도외시되면서 그들의 역사마저 사라지고 있다. 특히 여느 동포와 달리 고려인은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니라 강제이주라는 아픈 역사를 안고 있으면서도 조국의 문화를 당당히 지켜오고 있고, 항일전선의 최선봉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차별적 의미는 아니지만 이러한 고려인들의 후손이 조국에서 난민이나 이주여성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현실은 많을 생각을 하게 한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인 고려인들에게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고려인이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전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꽃피우고 살고 있는 것처럼, 고려인들도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잖은가. 그러니 진정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가 고려인이라 할 수 있다.

연해주에는 36개의 항일 무장단체가 있을 만큼 항일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다. 그런가 하면 모국어 전문 연극극장과 블라디보스톡 민족사범대가 있었고, 등록된 고려인민족학교도 38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해외에서 유일하게 한글문단이 형성됐던 곳이기도 하다.

강제이주 이후에도 다른 민족의 사람들과 달리 척박한 땅을 일구며 한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면서 우리 문화의 꽃을 피우고 얼을 지켜낸 사람들이 바로 고려인들이다. 고려인들은 '남의 나라 땅에 살고 있으니 공부도 두 배 더 해야 한다'며 자식들을 가르쳤다. 러시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면서 톨스토이에 비유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아나똘리 김 작가를 비롯해 소련 사회주의 노동영웅도 많고 과학이나 수학 분야에도 뛰어난 업적을 발휘한 고려인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고려인문화관은 어떻게 하여 개관하게 됐는가.

"25년간의 카자흐스탄 생활을 마치고 그동안 모아 온 자료를 갖고 2016년 귀국했는데, 광주에 고려인 마을이 있더라.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을 보였지만 내 고향인 광주에서 개관하고 싶었다. 다행히 광산구청에서 고려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에 적극 공감, 호응하고 지원해주어서 지난 5월 개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먼저 고려인 유물을 수집해온 최 아리따라는 분에게 모든 자료를 기증할 계획이었는데 그분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 내가 인수하지 않았으면 최 씨가 모은 자료들은 러시아에서 매입했을 거다. 거저 인수한 것이 아니기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전시자료들은 어떤 종류인가.

"고려일보에서 일하면서 '고려인 유물을 이대로 방치하게 되면 언젠가는 사라지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에서 알음알음을 통해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았다. 하지만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과정에서 다량의 물건이 당국에 압수되거나 후환이 두려워 자체 폐기해 버린 탓에 남아있는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문화관에는 현재 1만2천여 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항일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유명 고려인 작가들의 육필원고 등은 매우 가치 있는 자료들이다. 강제이주 이전과 이후, 또는 소련해체 당시 등의 제례와 교육, 생활상 등을 볼 수 있는 사진 자료와 각종 문서, 서적 등도 고려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전시물 중 23권의 자료가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것도 그런 차원이 아닐까 싶다."


-고려인문화관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고려인들이 소련 해체 이후 각 지역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인류학적으로는 소멸과정에 돌입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고려인도 여진족이나 말갈족처럼 '그런 민족이 있었다'고 역사의 기술로만 남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100년 200년이 흐르고 나면 그러지 않겠는가.

비록 중앙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현지인과 동화되고 흡수되어 사라진다 해도 고려인들이 소련 민족은 물론 여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강제이주로 끌려가 살면서도 민족문화를 선도해온 고려인들과 그 후손들을 기억하고, (정부가)귀향법을 만들어 국내에 정착하고 싶은 고려인들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뜻 있는 젊은이들이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여 고려인 문화사업을 더 활성화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고려인문화관도 후임자를 양성해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한 분야에 평생 천착해온 사람답게 그의 입에서는 고려인의 연대기적 역사와 문화가 잘 다듬어진 연설문처럼 쏟아져 나왔다. 역사교과서에 기술된 한 줄의 문장이었던 고려인이 증강현실로 살아나 내게로 달려왔다. 증강현실의 화면에서는 '가장 존중받아야 할 동포가 가장 천대받고 있다.'는 그의 안타까움도 함께 보였다. 조영석시민기자 kanjoys@hanmail.net

조영석

그놈의 제어되지 않는 감정이입이 항상 문제다. 후배의 만혼에 주례를 서다 홀어머니의 손등에 얹힌 보굿같은 주름에 목이 메이기도 하고, 소고기를 맛있게 먹다가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우공의 발길이 생각나 식욕을 잃기도 한다. '감수성'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예민한 센서가 불편하다. 상처받기 쉽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사는 기쁨이 되기도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