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이 만난 사람⑬] 가위손의 명불허전 '한울이 미용실' 김진숙 원장
입력 2021년 08월 24일(화) 10:47 수정 2021년 09월 10일(금) 10:51
공장·양장점·미용실 갈림길서 선택
연탄가스중독 사경…별명 ‘비실이’
경기도 산골짜기 파마약 공장 찾고
중화제 역할 궁금해 스스로 공부
39세 늦깎이 대학생서 박사학위까지
모교 특강 후 초빙교수 거쳐 정교수
광주여대·조선대·광주대 후진양성
대한민국 미용명장 1호로 책임감 커
광주·전남 미스코리아 배출 미용실
제자들 기능올림픽 전국대회 휩쓸어
상 받은 무기수 제자 감형돼 새 삶
헤어아트 공유할 전수관 건립 바라
'열여덟 살 미용실 보조에서 대한민국 미용명장 1호, 서른아홉 살의 만학도 대학생에서 '미용예술학'박사학위를 받은 대학교수, 실업계 고등학교 1급 국정교과서 '헤어미용' 집필자, 2000년 직능인 분야 신지식인, 미스코리아를 배출해 낸 미용실 원장, 버려진 머리칼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헤어 아트' 창시자'
'한울이 미용실' 김진숙 원장(65)이 '미용'이라는 한 바다에서 건져 올린 팔색조 같은 삶의 금자탑이다.
흔히 그렇듯이, 그만하면 권위나 명성을 앞세우며 폼 나게 걸어도 될 성 싶지만 그녀는 오늘도 권위나 명성에 앞서 달린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하루의 시작을 한 시간 남짓의 독서로 시작 하고, 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철학 강의나 구청의 인문학 강좌에도 기꺼이 빠져 사는 바지런한 배움꾼이다. 그런가 하면 한 달에 한 번씩은 동사무소와 연계해 어려운 이웃의 머리염색이나 커트 등 봉사활동을 다닌다.
1977년 '한울이 미용실'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고객이 지금도 단골손님으로 그녀를 찾는다. 강산은 네 번이나 변했지만 그녀의 초심은 아직 변함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용업계의 대가에서 전설로 넘어가고 있는 김 원장을 이달 초 광주시 동구 동명로 소재 '한울이 미용실'에서 만났다.
-미용실이 카페나 갤러리 같다.
(미용실 안에는 유화처럼 보이는 자신의 헤어 아트 작품 여러 점과 이런저런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 응접세트를 겸한 탁자와 장식용으로 놓여 있는 오래된 가죽 의자 등이 무의식의 시야를 채운다. 손님이 앉을 두 개의 의자 세트가 전부인 별도의 작은 미용실 공간은 정작 의식의 공간이다.)
"미용실이 충장로에 있을 때는 20여명의 직원을 둔 적도 있으나 지금은 1인 샵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고객의 두상 특징에 따른 맞춤형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싶은 마음에 예약제로 운영하면서 연구실을 겸하다 보니 편하게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미용만 하는 곳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쉼터나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해요."
-대한민국 미용명장 1호다. 개인적 의미는.
"2002년이었는데 미용가위를 손에든지 31년 만으로 마흔아홉 살이었어요. 젊은 나이였고 경륜도 업계에서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어서 '내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영광스럽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명장이 됐어요. 힘들게 한 길을 걸어 온 삶의 흔적이 명장이라는 영예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미용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제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기뻤지만 책임감이나 공적가치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후배들을 길러내 사회에 진출시키고, 명장이 되고 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미용요금을 인상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미용업계에 입문은 어떻게.
"가정 형편이 여의치 못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미용실이 아니면 공장에 들어가거나 양장점에 취직해야 했는데 어린 나이에 하얀 가운을 입고 일하는 미용실이 좋아 보였죠. 초등학교 졸업 후 학력인정 학교인 재건학교(중학과정)를 마친 뒤 언니가 운영하던 미용실에서 처음으로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열여덟 살이었어요. 그 뒤 서울 충무로의 한 미용실에서 근무하면서 미용실에 들리던 유명 연예인들을 보며 '나는 미용으로 반드시 성공 하겠다'고 마음먹게 됐는데 그때는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몰랐죠."
-다짐으로만 성공하지는 않는데.
"미용실에서 근무 할 때 별명이 '비실이'였어요. 시도 때도 없이 쓰러지다보니 붙은 별명이죠. 몸이 약해서라기보다는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이었어요. 서울에서 미용실 막내로 일할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연탄불을 간 다음에 고데기를 연탄구멍에 꽂아놓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그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어요. 하는 수 없이 광주로 내려와 3개월 정도 병원에 입원했지만 걷지도 못한데다 피부까지 노래지니까 다들 죽는다고 했어요. 겨우 몸을 추스르고 다시 미용실에 들어갔는데 아프다고 하면 일을 못하게 할까봐 아프다는 말도 못했어요. 그러면서 쓰러지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쓰러지면서 죽기 살기로 일했어요."
-'연구하는 미용가'라고 하더라.
"미용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어요. 경기도 산골짜기에 있는 파마약 공장을 찾아가 약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중화제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파마를 하면 왜 머릿결이 상하는지를 꼼꼼히 공부하다보니 미용현장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말도 마세요. 지금이야 교통수단이 좋아졌지만 1970년대만 해도 길은 또 얼마나 험악하던지. 찾아가기도 힘들고, 흙먼지 뒤집어쓰기 일쑤인데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그래도 배우는 게 좋았어요.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른아홉 살에 대학에 입학한 만학도였지만 박사학위까지 받아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지 않나 싶어요."
-대학교수는 어떻게.
"1992년 광주대 산업교육학과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했어요. 개방대 시절이었는데 학문의 기회를 놓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기회이자 희망의 문이었죠. 학부과정을 마치고 나니 공부를 더하고 싶어지데요. 그래서 조선대 보건대학원에 진학해 보건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박사학위는 부산에 있는 영산대에서 받았어요. 영산대 미용예술학 1호 박사죠. 졸업 후 영산대에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수님들의 요청으로 처음에는 초빙교수를 하다 곧바로 정교수로 임용됐어요."
김 원장은 광주여대 미용학과 교수와 조선대 산업대학원 미용향장학과 겸임교수도 역임했다. 현재는 광주대 뷰티미용학과 석좌교수로 재임중이다. 자신이 다녔던 모든 대학에서 제자를 길러낸 셈이다. 딸 손진아 씨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광주여대 미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광주·전남 미스코리아도 배출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 그들이 기능올림픽 지방대회와 전국대회를 휩쓸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광주교도소에 직업교육을 가르치러 다닐 때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조모라는 여인이 있었어요. 그녀가 미용교육을 계기로 전국 기능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아 특별 감형으로 풀려난 뒤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미용이 한 사람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져낸 것 같아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하고 있네요."
-머리카락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헤어 아트' 창시자이다. '헤어 아트'란.
"미용에서 파생한 머리칼을 염색하여 목공용 본드로 붙이거나 분쇄한 뒤 회화적 기법으로 표현해내는 신개념 예술이라 보면 되요. '버려지는 머리카락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 헤어 아트예요. 꽃꽂이나 회화하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세상에 나왔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1997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공식적인 첫 선을 보인이후 헤어 아트를 하는 미용인들이 많아졌는데 대부분 저에게서 공부했다고 봐야겠죠."
-희망이 있다면.
"미용이 아름다워지고 싶은 꿈을 실현해주고 삶의 가치를 풍요롭게 해주는 뷰티문화산업으로 정착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나의 미용 기술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어 유능한 미용인들을 배출하고, 헤어 아트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전수관이나 전시관이 있었으면 해요.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그런 일들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가는 글이 쉽지 않았다. 그녀가 일궈낸 삶의 봉우리가 하나이면 좋을 뻔 했다. 글 길에 히말라야 14좌처럼 개별적 기승전결로 솟은 8천m 이상의 걸출한 봉우리들이 파도마냥 일었다. 고봉을 오르지 못한 글발이 베이스캠프에서 서성였다. 지면부족이 아니라 문재(文才)부족이다.
조영석은
오랜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예순을 넘어서자 팔뚝 굵은 적들이 가여워졌다. 대신 젊은 시절 가여웠던, 이를테면 풀잎이나 참새 같은 그런 나약한 생명들이 경외스럽다. 자신의 고향인 진도군 조도가 대한민국을 대양으로 이끄는 예인선이라고 우기고 산다. 진짜다.
조영석 시민기자 kanjoys@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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